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히로시마·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 (문단 편집) === 일본의 종전 묵살 === 원폭 투하 결정의 가장 큰 이유였다. 당시 일본은 항복하지 않으면 멸망이 확실한 상황이었다. 일본 해군은 궤멸 수준을 넘어 [[구레 군항 공습]]으로 사실상 강제 해체된 것이나 마찬가지였고[* 이 공습으로 인해 사실상 일본 해군이 이 당시 아직까지 기동 가능한 군함 및 함선은 거의 대파되거나 사용 불능이 되어버린 상태나 마찬가지여서 강제 해체란 말이 지나치다고도 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일본의 국민들은 매일같이 굶주림에 시달렸으며 자원도 없어서[* [[도쿄 대공습]]으로 말미암아 공업 생산력도 상실했고 이후로도 공습은 일상화된지라 두말 할 필요가 없었다.] 군부에서 준비시키던 본토 결전용 병기라고는 [[죽창]], [[활]], [[일본도]] 같은 단순한 냉병기 정도에 불과했다. 그리고 ([[결호작전]] 문서에서 보면 알 수 있듯이) 당시 일본군은 투석기를 포병으로 편제하는 것을 진지하게 검토하고 있었는데 그나마 투석기와 죽창을 만들 나무마저도 바닥난 상태였다. 미국은 일본에 ''''1945년 8월 1일까지 항복을 하면 [[용서|일절 불문에 붙이겠다]]''''는 전쟁사에 드문 관대한 선언을 했으나 일본은 이를 묵살했다. 이 당시 [[추축국]]의 상황을 보자면 1945년 5월에 [[이탈리아 사회 공화국]]과 [[나치 독일]]이 항복했으며 일본 제국만이 유일하게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1945년 8월 2일이 되자 미국은 전쟁을 어떻게든 끝내기로 결심한다. 말이 본토 결전이지 당시 일본은 나치 독일과는 다르게 본토에서조차 전쟁 속행이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그 독일도 본토 방어전 후반부에는 전력이 후달려서 [[소년병]]을 징집하는 등 별 짓을 다 하긴 했지만 적어도 국민돌격대를 창설하여 제식 무기나 노획한 무기와 탄약도 지급했으며 이후 소련군이 [[베를린]]을 점령할 당시에도 무장한 시민 대부분은 적어도 칼이나 죽창 같은 냉병기가 아니라 총을 가지고 싸웠고 지휘관들의 역량 역시 일본군과는 비교도 안 되었다. 또한 망가진 전차를 포탑만 수리해서 고정포대로 써먹는 등 일본에 비하면 비교가 안될 정도로 나은 수준이었다. 하지만 일본 지휘부와 기득권층은 아무튼 오로지 항복할 때 천황제 유지[* 당대 용어로는 '국체호지(國體護持)'라고 하였다. 천황=국가라는 이야기이다. 전후 일본은 천황제를 유지했으나 천황은 전쟁 후 [[더글러스 맥아더]]에게 끌려가서 인간 선언을 하는 치욕을 맛봐야 했다. 이후 총리내각제가 도입된 일본에서 천황이란 [[유럽]] 왕실과 마찬가지로 한낱 연예인으로 전락해 버리고 만다. 법적 형식상으로나마 국왕의 결재를 받아야 하고 어느 정도 거부권도 행사할 수 있는 데다 사문화되었지만 의회를 해산할 수 있는 권한도 있어 정치에도 일부 관여하기도 하는 등 권한 행사가 가능한 영국을 포함한 유럽 왕실과는 달리 일본 왕실은 일일이 행보를 제한받으며 최종 결재권은 커녕 거부권도 형식적으로조차 주어지지 않는 '일본국의 상징', '일본 국민 통합의 상징'일 뿐이다.]라는 조건을 얻어내겠다며 자국민들을 [[반자이 돌격]]과 [[카미카제]]와 [[옥쇄]] 등으로 갈아넣으며 [[최후의 발악|허세를 부려서 조건부 항복을 얻어 내겠다]]는 포부를 내비쳤다. [[https://www.quora.com/Did-Japan-really-try-to-surrender-before-the-atomic-bomb-was-dropped-on-Hiroshima|#]] 이것이 '''1억 총옥쇄'''라고도 불리는 '''[[결호작전]].''' 이러한 일본인들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던 미국은 '도대체 [[일본인]]은 [[아무래도 미친 것 같아요|어떻게 된 미친 놈들인가]]?'라는 식의 연구도 이루어졌고 이런 연구의 대표적인 결과물이 바로 루스 베네딕트의 명저 [[국화와 칼]]이다. 미국은 이내 일본군은 무사도 정신을 기반으로 죽음과 희생을 비극이라기보단 명예롭고 아름답게 여긴다는 결론을 내린다. 일본군 수뇌부는 농담이 아니라 모든 국민을 희생시켜서라도 항복하지 않을 각오였다. [[옥]]이 부서진다는 위 표현처럼, 수뇌부 입장에서 국민들의 희생은 피해야 할 비극이 아니라 오히려 능동적으로 지향해야 할 아름다운 문화였다. 이 시점에서 이 전쟁은 돈과 힘 싸움이나 전략전술이 아닌, 미국이 일본의 정신력과 할복으로 대표되는 자결 문화를 어떻게 극복하고 전쟁을 효율적으로 이길 것인가의 문화 싸움으로 국면이 바뀌게 된다. 미군과 미국 정치인들 입장에서는 아무리 전력차가 압도적이라지만 일본 섬멸의 날까지 국민들이 계속 희생되는 것은 원치 않았다. 일본 초토화 작전, 즉 [[몰락 작전]]이 고려되긴 했으나 워낙 희생이 큰 탓에 실행되진 않았다. 미국은 1945년 7월 30일에 작성한 '[[카미카제|일본의 비밀무기: 자살]]'[* [[https://www.cia.gov/readingroom/docs/DOC_0000709802.pdf|CIA가 공개한 보고서 원문 링크]].]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일본군]]이 '죽으면 [[야스쿠니 신사]]에 간다[* 이게 빈말이 아닌 것이 당시 [[일본군/군가|일본군 군가]] 중 하나인 도키노사쿠라, 즉 [[동기의 벚꽃]]의 가사가 이런 내용이다.]'며 [[http://www.huffingtonpost.kr/2014/04/25/story_n_5208626.html|자살 공격을 적극적으로 조장하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결국 '''일본은 일본인의 완전 소멸 또는 국가 존속이 위협을 받아야 항복한다'''고 결론을 내렸고 이에 따라 맨해튼 프로젝트의 결과물, 핵 투하를 결정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